제1회 암환자 수기 공모전 -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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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과 자신감으로 나는 살고
있다.
-박금성
사람이 생(生)을 부여받은 것은 모두 평등하지만 그 삶의 방식은 꼭 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57년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서부터 가정생활도 원만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고, 젊어서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으며, 별 탈 없이 잘 자라주는 두 아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직장에서 역시 큰 트러블 없이 첫 직장에서
얼마 전까지 근속해왔습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산악회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청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해왓으며 스스로도 건강에 늘 자신해왔습니다.
그르던 어느 날, 몸은 아프지 않은데 평상시와는 달리 변의 굵기가 가늘고 하루의 배변횟수가 4~5차례 정도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약 1년여 동안 같은 증상이 반복되면서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상의하여 찾은 인천의 모 병원에서 대장과 위 내시경 검사를 받은 결과 위암과 대장암을
진단받았습니다. 평소 건강에 자부심을 느껴왔던 저로서는 충격적인 결과였고 아내 역시 큰 눈 가득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저는 담담한 표정 뒤로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졌습니다.
또 다행히도 조기에 발견되었다는 말에 삶에 희망과 자신감까지 가질 수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자세로 포기하지 않고 '살아보이겠다'고 마음먹은 저는 인천 길병원으로 옳길 것을 아내와
상의하여 2011년 7월 8일 수속절차를 밟아 입원했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받은 정밀검사 결과 대장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위와 간까지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7월 18일로 수술(위, 간, 대장암)
날짜가 잡혔습니다.
저는 긴 수술이 될 것이며 종양의 전이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을 경우 그대로 수술을 중단하고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도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도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암세포가
우리 몸에 너무 깊숙이 침투하여 때를 놓친 경우에는 수술대에 오르는 것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지난 7월 18일 오전 7시 30분, 저는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마취 전 저를
위해 모여주신 의료진 앞에서도 저는 두려움보다는 희망과 살 수 있다는 모여주신 충만한 저 스스로를 느끼며
마음속 주신나마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무려 11시간 30분에 걸쳐 수술을 받는 동안 그 수술시 바깥에서
저를 기다리며 제 가족들이 느꼈을,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고통과 두려움은 짐작이 가시리라
믿습니다. 저 또한 마취에 취해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져들면서도 제 수술의 결과보다는 바깥의 가족들이
걱정되었습니다.
긴 수면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가족들이 제 침상주위를 둘러싸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족들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반갑고, 또 제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더군요. 일일이
인사해주고 고맙다고 걱정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한 사람, 한 사람씩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웃음이 나면서도 눈물도 나올 것 같은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지만 수술부위가
아파 제대로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못했지만, 저를 기다려준 가족들에게 무사히 돌아왔다는 행복감에 양 손의
엄지를 자랑스레 치켜들었습니다.
인천지역암센터에서는 2011년 11월 10일부터 12월 5일에 걸쳐 제1회 암환자 수기 공모전을 실시하였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속에 신청 된 작품들 중에 대상을 받은 수상작입니다.
아래의 파일을 다운받으시면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박금성
사람이 생(生)을 부여받은 것은 모두 평등하지만 그 삶의 방식은 꼭 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57년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서부터 가정생활도 원만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아왔고, 젊어서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으며, 별 탈 없이 잘 자라주는 두 아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직장에서 역시 큰 트러블 없이 첫 직장에서
얼마 전까지 근속해왔습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씩 산악회활동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청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해왓으며 스스로도 건강에 늘 자신해왔습니다.
그르던 어느 날, 몸은 아프지 않은데 평상시와는 달리 변의 굵기가 가늘고 하루의 배변횟수가 4~5차례 정도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약 1년여 동안 같은 증상이 반복되면서 '아!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상의하여 찾은 인천의 모 병원에서 대장과 위 내시경 검사를 받은 결과 위암과 대장암을
진단받았습니다. 평소 건강에 자부심을 느껴왔던 저로서는 충격적인 결과였고 아내 역시 큰 눈 가득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저는 담담한 표정 뒤로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졌습니다.
또 다행히도 조기에 발견되었다는 말에 삶에 희망과 자신감까지 가질 수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자세로 포기하지 않고 '살아보이겠다'고 마음먹은 저는 인천 길병원으로 옳길 것을 아내와
상의하여 2011년 7월 8일 수속절차를 밟아 입원했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받은 정밀검사 결과 대장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위와 간까지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7월 18일로 수술(위, 간, 대장암)
날짜가 잡혔습니다.
저는 긴 수술이 될 것이며 종양의 전이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을 경우 그대로 수술을 중단하고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도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도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암세포가
우리 몸에 너무 깊숙이 침투하여 때를 놓친 경우에는 수술대에 오르는 것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지난 7월 18일 오전 7시 30분, 저는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마취 전 저를
위해 모여주신 의료진 앞에서도 저는 두려움보다는 희망과 살 수 있다는 모여주신 충만한 저 스스로를 느끼며
마음속 주신나마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무려 11시간 30분에 걸쳐 수술을 받는 동안 그 수술시 바깥에서
저를 기다리며 제 가족들이 느꼈을,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고통과 두려움은 짐작이 가시리라
믿습니다. 저 또한 마취에 취해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져들면서도 제 수술의 결과보다는 바깥의 가족들이
걱정되었습니다.
긴 수면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가족들이 제 침상주위를 둘러싸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족들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반갑고, 또 제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더군요. 일일이
인사해주고 고맙다고 걱정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한 사람, 한 사람씩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웃음이 나면서도 눈물도 나올 것 같은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지만 수술부위가
아파 제대로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못했지만, 저를 기다려준 가족들에게 무사히 돌아왔다는 행복감에 양 손의
엄지를 자랑스레 치켜들었습니다.
인천지역암센터에서는 2011년 11월 10일부터 12월 5일에 걸쳐 제1회 암환자 수기 공모전을 실시하였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속에 신청 된 작품들 중에 대상을 받은 수상작입니다.
아래의 파일을 다운받으시면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